허수시간의 단점과 장점

나는 특수상대론을 설명 할 때, 물리적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접근 하는걸 좋아한다. 현대물리 — 즉, 양자역학과 상대론을 배우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큰 장애물은 ‘비직관성’이다1. 인간은 시간지연이나 공간수축 같은걸 감각기관으로 경험한 바가 없기에, 상대론을 처음 배울때 수시로 뇌정지가 오는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수학은 그저 규칙만이 있을 뿐이고, 감각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 나는 수학의 그런 비인간적 특성이 상대론을 가르치는데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느낀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평평한 2차원 공간’을 기술한다 : $$X^2+Y^2=S^2 \tag{1}$$

밑변길이가 $X$, 높이가 $Y$인 직각삼각형이 있다면, 빗변길이 $S$는 식$(1)$과 같이 계산된다. 그리고 특수상대론은 핵심은,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우주에선 ‘평평한 2차원 시공간’이 다음과 같은 수식으로 기술된다는 사실이다 : $$X^2-T^2=S^2 \tag{2}$$

즉, 식$(1)$에서 식$(2)$로 넘어가려면 공간 $Y$를 허수시간 $iT$로 치환해주면 된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이런 전략으로 시간지연이나 길이수축을 설명 할 수 있는것은 물론이고 상대론적 상대속도 공식, 로렌츠 변환 공식 같은 고급과정에서 배우는 식들도 유도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순수하게 수학적이지만, 상대성원리나 광속불변 원리의 내용을 그 자체가 이미 품고 있다. 그래서 수학으로 먼저 이해하고, 그곳을 다시 출발점 삼아 물리를 설명하는 라인이 형성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식의 설명방법을 쓰는 교과서는 거의 없다. 리보프Richard L. Liboff 양자역학 교과서의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단원에선 허수시간을 적극 사용한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인 장회익 교수님이 어떤 EBS 강연에서 허수시간을 통해 상대론을 설명 하는걸 본적이 있다. 그 정도가 내가 본 전부다. ‘허수시간 전략’은 상대론 설명에 있어 분명 주류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 어떤 단점이 있기에 허수시간은 교과서에서 자연선택되지 못하는가? — 그것이 내적inner product에 대한 일반적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는것이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싶다.

임의의 두 vector $\mathbf{a}$와 $\mathbf{b}$에 대한 내적은 행렬형태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내어진다 :  $$ \mathbf{a} \cdot \mathbf{b} = (a_1^* \quad a_2^* \quad \cdots \quad a_n^*) \begin{pmatrix} b_1 \\ b_2 \\ \vdots \\ b_n \end{pmatrix} \tag{3}$$

필자가 알기론 식$(3)$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내적은 없다. 그런데 허수시간을 통한 설명은 그렇지 않다. 시공간상의 임의의 한 점을 나타내는 four-vector $\mathbf{x}$를 허수시간을 통해 나타내면 $\mathbf{x}=(it, x, y,z)^{\mathrm{T}}$ 인데, 이를 식$(3)$의 문법에 따라 계산하면 : $$ \mathbf{x} \cdot \mathbf{x} = (-it \quad x \quad y \quad z) \begin{pmatrix} it \\ x \\ y \\ z \end{pmatrix} = t^2+x^2+y^2+z^2 \tag{4}$$

즉, 내적의 일반적인 문법을 따르면 그냥 4차원 유클리드 공간이 나온다. 나는 허수시간을 통한 설명을 좋아하고 또 가장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사람이지만, 식$(4)$에서만 내적계산에 대한 예외적 규칙을 적용하자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내맘대로’식 주장은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

내적의 일반적인 규칙과 허수시간을 동시에 지킬 방법은 없는것 같다. 그래도 끝까지 노력해보자면, 시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을 기저 벡터basis vector로 몰아넣는 것이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을것 같다. four-vector $\mathbf{x}$를 성분과 기저가 모두 드러나는 형태로 다시 써보자 : $$\mathbf{x}=t \hat{t} + x \hat{x} + y \hat{y} + z \hat{z} \tag{5}$$

이때 식$(5)$의 성분들은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이고 따라서 실수이다. 지난 포스팅에서 설명한바 있듯, 여기서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는 기저들간의 관계 — 즉 기저들간의 내적 $\hat{\mathbf{e}}_{\mu} \cdot \hat{\mathbf{e}}_{\nu}$이 담고있다. 3차원 공간에 대한 기저 $\hat{x}$, $\hat{y}$, $\hat{z}$는 서로 직교하므로, 이들의 내적은 $3 \times 3$ 크기의 단위행렬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특수상대론의 기하학적 구조를 완성하려면, ‘$\hat{t}$는 다른 3개 차원의 기저벡터와 직교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내적은 $-1$이다’라고 정의하면된다 : $$\hat{t} \cdot \hat{t} = -1 \tag{6}$$

그런데 나는 이런 설명에서도 상당한 찝찝함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hat{t}$가 하나의 column vector 처럼 느껴진다. 만약 실제로 그렇다면 그 스스로의 내적에 대해 식$(4)$와 같은 계산을 할 수 밖에 없을것이고, 식$(6)$ 좌변의 계산결과는 $+1$이 되야 할것이다. 이는, $\hat{t}$ 자체를 식$(6)$의 표현으로 ‘정의’ 해야 함을 뜻하는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정의하면, 평평한 시공간에 대한 metric tensor $\eta_{\mu\nu}$는 다음과 같은 형태를 가지게 된다 : $$ \eta_{\mu\nu} = \hat{e}_\mu \cdot \hat{e}_\nu = \begin{pmatrix} \hat{t} \cdot \hat{t} & \hat{t} \cdot \hat{x} & \hat{t} \cdot \hat{y} & \hat{t} \cdot \hat{z} \\ \hat{x} \cdot \hat{t} & \hat{x} \cdot \hat{x} & \hat{x} \cdot \hat{y} & \hat{x} \cdot \hat{z} \\ \hat{y} \cdot \hat{t} & \hat{y} \cdot \hat{x} & \hat{y} \cdot \hat{y} & \hat{y} \cdot \hat{z} \\ \hat{z} \cdot \hat{t} & \hat{z} \cdot \hat{x} & \hat{z} \cdot \hat{y} & \hat{z} \cdot \hat{z} \end{pmatrix} = \begin{pmatrix} -1 & 0 & 0 & 0 \\ 0 & +1 & 0 & 0 \\ 0 & 0 & +1 & 0 \\ 0 & 0 & 0 & +1 \end{pmatrix} $$

여기까지 오면 더이상 허수시간이 필요없다. 시공간의 모든 기하학적 특성은 $\eta_{\mu\nu}$가 가지고 있고, 이는 vector와 co-vector를 오가거나 그 둘 사이의 내적을 연결할때 쓰이게 된다. 결국, 일반적인 metric tensor $g_{\mu\nu}$를 다루게 되면 자연스럽게 허수시간의 필요성이 사라진다.

따라서 전체 그림을 본다면, 허수시간을 설명하는것은 누군가에겐 오히려 혼란만 더하는 일일 수도 있다. 어차피 허수시간은 내적의 문법과 마찰을 일으킬 수 밖에 없고, 또한 결국 metric tensor $g_{\mu\nu}$의 등장과 함께 그 필요성은 소멸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허수시간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의 확실한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정리 한줄 써놓고 허수시간으로 한번만 치환하면 바로 특수상대론의 정수로 들어갈 수 있다. 필자는 최근 DMT PARK의 멤버쉽 영상에서 그런식으로 설명할 일이 있었는데, 식$(1)$과 $(2)$를 적고 설명하는데 5분도 안걸렸다. 그럼에도 핵심은 다 말한 셈이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평평한 2차원 공간의 특성을 나타낸다’는 문장을 당연스럽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는 5분도 안되어 특수상대론의 핵심 아이디어를 다 이해한 셈이 된다.

허수시간은 분명 상당한 교육적 퍼텐셜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다. 허수시간은 우주의 시작을 설명 할 수 있는 퍼텐셜 또한 품고 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관측된 우주에서 출발해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라 시간을 되감으면 필연적으로 빅뱅 특이점Big Bang Singularity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빅뱅 특이점의 진정한 함의는 우주가 실제로 그런 상태였다는것이 아니라, 우주의 시작점에선 중력장이 너무 강해서 양자적 효과를 무시 할 수 없다는데 있었다. 호킹은 1965년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에서 빅뱅 특이점 정리를 공들여 증명한 후, “이는 곧 우주의 탄생이 양자적 사건이었다는 증거“라고 썻다.

그리고 호킹은 이 양자적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무경계 가설no-bounday hypothesis’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 가설은 우주의 시작에서 시간은 정말로 허수였다고 주장한다 :  

[그림1] 빅뱅 특이점 vs 무경계 가설 source

먼저 [그림1]의 왼편을 보자. 뉴튼의 절대시간/절대공간과는 달리, 실제론 시간과 공간은 서로 섞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과 공간 사이의 구분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다. 시간은 metric tensor $\eta_{\mu\nu}=\mathrm{diag}(-1,+1,+1,+1)$에서 음의 부호를 가지며 공간과 명확히 구분된다. 이 때문에 4차원 시공간에서 빛이 퍼져나가는 면은 4차원 구sphere가 아니라 광원뿔light cone을 이룬다. [그림1]에서 수직축은 시간을 나타내는데, $\eta_{\mu\nu}$에서 시간축에 대한 부호가 음수이면, 시간되감기 속에서 시공간은 원뿔의 꼭지점과 같은 곳으로 한없이 수축한다. 그리고 그 끝이 바로 빅뱅 특이점이며, 상대성이론은 그런 특이점에서 무한대를 내며 붕괴한다.

호킹은 우리 우주가 민코프스키 공간Minkowski space이 아니라 유클리드 공간Euclidean space으로 시작되었을거라는 ‘무경계 가설’을 주장했다. 이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향에서 보면, 시간 $t$가 허수시간 $it$로 전환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원래 시공간에 대한 식 $s^2=-t^2+x^2+y^2+z^2$은 $s^2=t^2+x^2+y^2+z^2$으로 전환된다. 이런 상황에선 $t$, $x$, $y$, $z$ 각각이 어떤 특별한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우주가 시작될때의 시공간은 다음과 같은 유클리드 공간 이었다는 것이다 : $s^2=x_{1}^{2}+x_{2}^{2}+x_{3}^{2}+x_{4}^{2}$

이런 시공간은 원뿔cone이 아니라 구sphere 형태를 가진다. 즉, 이때는 4개의 좌표 $x_i$ 사이에 대한 구분이 없으므로,  시간축은 [그림1]의 왼쪽과 같이 한점을 향해 무한히 수축하는 형태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모든 축이 동등한 상태라면 시공간은 구sphere의 형태를 가져야 하므로, 무경계 가설에서 우주의 시작은 [그림1]의 오른편과 같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선 무한대가 튀어나오는 ‘특이점singularity’이 없다. 이는, 남극이 지구의 다른 어떤 지역과도 다르지 않은것과도 같다. 이런 상황에선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라는것 자체가 의미 없는 질문이다. 호킹은 이런 상황을 두고 “빅뱅 이전의 상황을 묻는 것은 남극의 남쪽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구 표면은 어딜보나 똑같고, 특별한 경계가 없다. 따라서 호킹은 허수시간에 기반한 그런 가설을 ‘무경계 가설’이라고 불렀다.

이해를 돕기위해, 호킹의 공동연구자 헤르토흐Thomas Hertog가 쓴 <시간의 기원>에 나온 도식을 첨부한다: 

무경계 가설은 여전히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는 많은 가설 중 하나일 뿐이다2. 하지만 이는 허수 시간의 물리적 중요성을 간과할 이유가 전혀 되지 못한다. 물리학과 관련한 다수의 교과서와 대중서적을 집필한것으로 유명한 Anthony Zee 교수는, 한 강연에서 허수시간을 ‘물리학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았다

혹시 젊은 여러분들이 풀어주실 수 있을까 하는 바램에 이 말씀을 드립니다. 제 생각에 물리학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양자세계의 동적진화가 헤밀토니안에 대한 지수함수 형태로 기술되고 : $e^{-i\mathbf{H}t/\hbar}$, 통계물리에서 볼츠만 인자 또한 해밀토니안의 지수함수 형태로 나타내어 진다는 점입니다 : $e^{-\mathbf{H}/k_{B}T}$. 그러니까, 허수시간과 온도의 역수 사이엔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거죠.

이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수년 동안 여러 저명한 물리학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는데, 의견은 분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 생각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수시간의 신비는 우주의 시작 뿐만아니라, 통계역학/양자역학/양자장론/상대성 이론 등 물리이론 곳곳의 깊은곳에 숨어있다. 이는,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허수시간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벌써 5년도 더 전에, 유튜브 영상에서 ‘허수시간에 대해선, 준비를 좀 더 해서 관련 영상을 업로드 하겠다’라고 말한바 있다. 당시엔 잘 몰랐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좀 더 공부하면 조만간 그런 영상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자연의 신비는 내가 알고 있는것 보다 훨씬 더 깊고 심오했다. 나는 아직도 허수시간에 대한 신비를 사람들에게 설명 할 수 있을만큼 알지 못한다.

  1. 많은 물리 전문가들은 상대론을 ‘고전물리’로 분류한다. 나는 그 분류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확률에 기반한 양자역학이야 말로 물리학의 역사에 있어 舊와 新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다. 하지만 그 둘은 여러면에서 꽤나 비슷하다 — 상대론은 ‘아주 빠른 상황’을,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세계’를 감각에 기반한 직관에서 크게 벗어난 형태로 기술하며, 또 그 둘은 20세기 초반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그런 의미에선, 그냥 이 둘을 ‘현대물리의 두 기둥’이라 부르기도 한다.[^]
  2. 내가 우주의 시작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Before the Big Bang>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둔지도 벌써 몇년째인데, 아직도 못봤다. 올 상반기엔 꼭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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