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과학 역사에 대한 짧은 리뷰와 챠니 리포트의 의의

기후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것은 탈레스에서 시작해 뉴튼이 완성하기까지 천년이 넘게 걸렸던 고전역학 처럼 발전하지 않았다. 기후과학은 양자역학 처럼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급격하게 발전했다.

대기 중 CO2 농도 증가로 지구 전체 온도가 변할 수 있음을 합당한 이론을 통해 정량적으로 계산한 최초의 인물은 화학자로 널리 알려진 아레니우스Svante Arrhenius이다. 그가 그런 계산을 한것은 1896년의 일이니1, 지구온난화에 대한 첫 계산은 2026년 현재를 기준으로 불과 130년전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레니우스의 주된 관심은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급격한 기후변화’ 같은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빙하기ice age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었다2. 대기 중 CO2 농도가 전 지구적 상승세를 보이고 있단 사실을 정확한 관측을 통해 처음 알게된것은 1960년 즈음의 일이었는데, 심지어 그 당시까지도 기후과학자들의 주 관심사는 빙하기였다.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2천년에 마지막 빙하기를 벗어나 간빙기interglacial period로 접어들었다. 간빙기의 지구 북반구엔 그린란드 대륙과 북극 바다까지만 얼음으로 덮여있고 그 아래로는 거대한 대륙빙상이 없다. 하지만 빙하기가 되면 북유럽과 미국 북부 전역이 1km가 넘는 두께의 대륙빙상으로 덮이게 된다3.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수만년이 넘는 과거의 사건들을 알 수 있는 걸까? — 사실 그 증거는 그저 땅위에 훤하게 드러나 있었다. 거대한 빙상은 막중한 무게로 그 아래 기반암을 짓누르며 상처를 남긴다. ‘빙하 찰흔glacial striation’이라 불리는 그 자국은, 마치 대륙빙상이라는 범인이 과거에 남겨놓은 흔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빙하기는 밀란코비치 사이클Milankovitch cycles 때문’이라는 설명은 오늘날 학생들에게 있어선 거의 공식처럼 외워야 할 만큼 확고히 다져진 사실이다. 하지만 빙하기에 대한 밀란코비치의 이론은 오랜동안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앞서 말한 ‘드러난 흔적’이 밀란코비치 사이클과 맞지 않는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질학자들은 지질학적 흔적들을 통해 과거에 4번의 빙하기가 있었을거라 추정했는데, 그 추정은 시간이 지나며 일종의 표준처럼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밀란코비치 사이클은 지난 100만년 동안 크고 작은 빙하기가 수십번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지표면 근처의 지질학적 흔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빙하기를 복원하기 어려웠던 것은, 마치 고속도로 아스팔트에 새겨진 스키드 마크를 통해 정확한 과거를 복원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했다. 빙상이 전진하고 후퇴하면서 남겨진 흔적은 마치 아스팔트 위에 쌓여가는 스키드 마크와도 같았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겹쳐져 있기에 정확한 분리가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바닷속 퇴적물이나 극지방 얼음 속 공기방울은 마치 과거를 촬영한 CCTV 블랙박스와도 같았다. 특히나 영국의 지질학자 니콜라스 섀클턴Nicholas Shackleton이 1970년대에 인도양 심해에서 채취한 퇴적물 코어들은 밀란코비치 이론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그는 방사성 칼륨을 이용한 새로운 연대측정 기법을 사용했다. 기존의 방사성 탄소 14C를 기준삼는 방법을 쓰면 4-5만년 정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방사성 칼륨 140K은 훨씬 느리게 붕괴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백만년 이상으로 훨씬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즉, 방사성 칼륨은 퇴적물에 대한 시간정보를 준다. 그리고 퇴적물 속 산소 동위원소 비율 18O/16O은 특정 시점에서 지구에 얼마나 많은 얼음이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바다에서 물이 증발할 때엔 비교적 가벼운 16O이 더 쉽게 증발하고 비교적 무거운 18O은 바다에 남게 된다. 그 결과, 증발한 물이 눈으로 내려 대륙빙하를 만들면, 가벼운 16O은 육지에 갇히고 바다에는 무거운 18O의 비율이 높아진다. 바닷속에 사는 유공충foraminifera의 껍질을 분석하면 산소 동위비율 18O/16O을 알 수 있으므로, 결국 해양퇴적물을 통해 지구표면에 얼마나 많은 얼음이 있었는지를 추정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1976년의 인도양 남부에서 채취한 두개의 심해 코어 RC11-120과 E49-18은 빙하기에 대한 밀란코비치 이론을 확정짓는 쐐기와도 같았다4. 해당 연구에선, 기존에 하나로 보였던 ‘2만년’의 주기를 ‘1만 9천년’과 ‘2만 3천년’이라는 근소한 주기 쌍으로 분리해 냈다. 그리고 이 주기 쌍은 천문학자들이 독립적으로 계산해낸 분점 세차에 대한 계산결과와 일치했다.

지구 자전축은 팽이축이 도는것 처럼 일정한 주기를 가지는 세차운동을 하는데, 이를 ‘분점 세차precession of the equinoxes’라 부른다. 이는 2만 6천년의 주기를 가지는데, 이것이 전 지구적 기후에 끼치는 영향을 보려면 좀 복잡한 전체 그림을 봐야한다. 결국 빙하기와 간빙기를 촉발하는것은 북반구 고위도 지방의 여름철 태양 입사량이다. 그런데 그것을 결정하기 위해선 단순히 자전축 방향만 고려해선 안되고 지구의 타원궤도 자체가 회전하는 현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목성과 토성과 같은 큰 행성이 지구에 가하는 중력 영향이 더해지게 되는데,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2만 6천년의 분점 세차 주기는 북위 65도 부근의 여름철 태양 입사량의 시간변화에 대해 1만 9천년과 2만 3천년의 주기를 만들어 낸다. 이런 사실은 천문학자들의 계산으로 이미 예측된바 있었는데, 그 주기가 전 지구적 기후에 끼친 영향을 섀클턴의 해양퇴적물 연구를 통해 정확히 확인되었던 것이다.

섀클턴의 연구만 보더라도, 밀란코비치 주기와 빙하기는 분명히 밀접한 연관음을 알 수 있다. 지구의 기후가 지구의 자전축이나 공전궤도에 영향을 줄 순 없으므로5, 인과관계의 화살표는 분명 밀란코비치 주기에서 빙하기 쪽으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빙하기에 대한 연구가 끝난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 화살표 중간엔 뭔가 빠져있는 큰 구멍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오랜동안 빙하기에 대한 밀란코비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밀란코비치 사이클 자체가 주는 직접적 영향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이나 공전궤도의 변화로 생기는 태양 입사량의 변동폭은 간단한 손계산 만으로도 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빙하기와 같은 큰 폭의 기후변동을 만들어내기엔 그 정도의 입사량 변화가 너무 작았다는 사실이었다.

지구 공전궤도의 이심률은 0.005에서 0.058 사이를 오간다. 현재는 대략 0.0167인데, 그 정도 이심률의 타원을 멀리서 보면 거의 완전한 원처럼 보인다. 우선 공전궤도를 완전한 원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럼, 이때 지구 자전축 기울기의 변화는 지구 전체에 대한 평균 태양 입사량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자전축은 공전평면을 기준으로 대략 22.1도에서 24.5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이 변화는 위도에 따른 태양에너지 분포의 약간의 변화를 줄뿐 이다. 참고로 서울은 북위 37.5도, 부산은 35.2도 정도에 있다. 따라서 자전축 기울기 변화로 인한 입사량의 변화폭은, 한반도를 기준으로 보자면 오늘날 서울과 부산의 입사량 차이 정도 밖에 안된다.

지구 전체에 대한 입사량 변화를 주는 유일한 요소는 지구 공전주기의 이심률 변화이다. 지구로 입사되는 평균 태양에너지는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태양-지구 사이의 평균거리를 1이라 하면, $\frac{1}{0.9^2} \simeq 1.235$이고 $\frac{1}{1.1^2} \simeq 0.826$이니 0.1만큼 가까울 때의 입사량 변화가 0.1만큼 멀때의 입사량 변화 보다 크다. 이는 곧 이심률이 클때 전체 입사량이 증가함을 뜻한다. 가까이 있을때 ‘더 받는 양’이 멀리 있을때 ‘덜 받는 양’보다 커서 전체 입사량은 증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의 이심률 자체가 작기 때문에 그 변동폭 자체가 미미하다. 궤도 이심률을 $e$라 하면 지구가 받는 연평균 총 태양 에너지는 $(1-e^2)^{-1/2} \simeq 1+ \frac{e^2}{2}$에 비례한다. 지구의 $e$는 0.005에서 0.058 사이를 오가므로, 이를 대입해서 계산해보면 이심률 변화로 인한 연평균 입사량 편차는 최대 0.6$\mathrm{W}/\mathrm{m}^2$ 정도라는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구 전체 온도를 1도 올리려면 태양입사량이 얼마나 더 늘어야 할까? 계산을 위해 기후 시스템의 복잡한 피드백은 무시하고 지구전체를 하나의 흑체blackbody라 생각해 보자. 이때 입사량과 방출량이 같아야 한다는 사실만을 고려하여 슈테판-볼츠만 법칙Stefan-Boltzmann law $F=\sigma T^4$을 통해 계산해보면, 지구온도를 1도 올리기 위해 필요한 입사량 증가분은 대략 3.8$\mathrm{W}/\mathrm{m}^2$ 정도가 나온다.

아주 간단하게 해본 계산이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대략적인 스케일을 추정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 지구 공전궤도나 자전축의 운동으로 인한 태양입사량 변화만으론 지구 전체 온도를 단 1도도 못바꾼다6. 그런데 분명 섀클턴의 해저 퇴적물은 지구전체의 얼음량이 밀란코비치 주기를 정확히 따름을 말해주고 있고, 빙하기와 간빙기 사이엔 5도 이상의 큰 온도차이가 있다7. 대체 밀란코비치 주기와 빙하기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 그 주인공이 바로 기후 피드백climate feedback이다. 그리고 기후 피드백 중에서도 지구온도를 조절하는 핵심 단자는 바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였다8.

밀란코비치 주기와 빙하기를 연결하는 고리들은 비슷한 시기에 다른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던 연구들에 의해 빠르게 채워질 수 있었다. 기상학자 슈쿠료 마나베Syukuro Manabe는 아레니우스가 했던 계산을 컴퓨터를 활용하여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수행했다. 그 결과 그는 1967년,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실제로 대기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신뢰 할 수 있을 만한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9. 그렇게 마나베가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서 CO2 농도를 조절하며 실험 하고 있을 즈음, 르벨Roger Revelle수스Hans Suess는 과연 바다는 대기 중에 추가된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소화시키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로저 르벨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회의론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바다는 거대한 탄소 흡수원이므로 화석연료를 태우며 생긴 탄소 정도는 바다가 쉽게 빨아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엔 근거가 있었다. 그는 20세기 중반에 수행된 핵실험에 의해 생성된 방사성 탄소 14C의 농도를 해양의 다양한 심도에 대해 측정했다. 그 결과 표층수와 심해수가 완전히 순환되는데는 수백년 정도가 걸린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이런 순환속도만 고려한다면 걱정이 없어 보였다. 화석연료로 인해 대기 중에 추가된 탄소는 그정도 속도의 해수순환을 타고 대부분 바다로 흡수 될 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화학’에 있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바닷물에 녹아들면서 일련의 화학반응을 거치는데, 그 결과 탄산이온carbonate ion, $\mathrm{CO}_{3}^{2-}$과 탄산수소 이온bicarbonate ion, $\mathrm{HCO}_{3}^{-}$이 형성된다. 사실 바닷속 탄소 대부분은 $\mathrm{HCO}_{3}^{-}$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기존의 평형상태에서 새로운 $\mathrm{CO}_{2}$가 추가되면, 그 평형이 재조정되며 전체 시스템은 pH 변화를 억제하는 완충작용buffer effect을 일으킨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때, 해수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르벨이 애초에 예상하던 것의 $\frac{1}{10}$수준 이었던 것이다. 르벨이 간과했던 완충작용의 효과를 나타내는 그 인자를, 사람들은 르벨 인자Revelle factor라고 부른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실제로 지구전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단 사실이 정확한 측정을 통해 밝혀졌다. 사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측정은 꽤나 쉬운일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 아마존 처럼 특정시기에 광합성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에서 잰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구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10. 산불이 자주 나거나 근처에 공업지대가 있어서도 안된다. 대기는 1년 내도록 지구전체를 돌며 섞일텐데, 그 중 ‘가장 안정적으로 섞여있는 곳’에서 측정해야만 그것을 지구전체 평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선택된 곳이 바로 하와이 마우나로아 화산 꼭대기와 남극이었다11.

그런데 사실, ‘1년 내내 이산화탄소 측정’이라는 연구는 얼핏보기에 연구비 낭비 같아 보일 수 있다. 지구온난화가 전혀 이슈거리가 아니었던 20세기 중반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쓸모 없어보이는 측정의 중요성을 미리 간파하고 CO2 측정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은 바로 로저 르벨 이었다. 그는 킬링Charles David Keeling을 그 프로젝트의 적임자로 점찍었고, 초기 자금 확보에도 힘썼다. 그 결과 킬링은 측정을 시작한지 2년여 만인 1960년에 대기 중 CO2의 상승을 입증 할 수 있었고12, 그것이 바로 킬링 곡선Keeling curve의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기후과학은 20세기 중반을 지나며 급격하게 발전되었고, 1970년대에는 과학자들의 오랜 숙제였던 빙하기의 원리가 밝혀졌다. 다양한 방향에서 독립적으로 이어져오던 연구들이 만나 빙하기의 미스터리는 해결되었지만, 그 사실이 미래에 대해 말해주는 바는 섬뜩했다. 그들은 빙하기 미스터리의 끝에서, 대기 중에 탄소가 계속 쌓일 경우 그것이 가까운 미래에 지구의 기후를 급격히 변화 시킬 수 있음을 알게된 것이다.

그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쓰여진 보고서가 바로 1979년 7월 발간된 ‘챠니 리포트Charney Report’이다. 기후과학자 피에르흄버트Raymond Pierrehumbert는 챠니 리포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13

미국 국립과학원 산하 국립연구위원회의 의뢰로 작성된 차니 보고서는 화석 연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 기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구름과 해양 순환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안정화 피드백 메커니즘의 가능성을 조사하고, hansen과 manabe의 기후 모델링 결과를 검토한 후, 챠니 보고서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두 배로 증가할 경우 지구 평균 기온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결론짓는다.

차니 보고서를 IPCC 보고서들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연구에 투입된 인력과 시간은 1979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지만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내용이 보다 구체화 되었을 뿐이다. 차니 연구팀은 초기 단계였던 두 개의 지구 기후 모델 결과를 분석하는 데 그쳤지만, IPCC 제4차 평가보고서에는 전 세계에서 개발된 약 20개의 지구 기후 모델이 포함되었다. ··· (중략) ···  그런 상황 속에서 차니 보고서는 기후 민감도를 1.5~4.5°C로 추정했는데, 이는 현재 IPCC가 제시하는 2~4.5°C 범위와 매우 유사하다.

통상적인 과학적 논의의 기준에 따른다면, 1970년대 당시의 증거 만으로도 비교적 강력한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했다. 만약 이산화탄소로 인한 복사 강제력radiative forcing과 그에 따른 기후 반응의 문제가 순전히 학문적 관심사였다면, 그것은 그 시점에 이미 잠정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이후 IPCC가 쏟아부은 막대한 노력은, 과학적으로 본다면 과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기후 문제가 가진 중요성 자체가 막대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화석연료 연소가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 전체의 큰 위기를 초래 할 수 있단건, 이미 1980년 즈음 부터 명징한 과학적 사실이었다. 당시엔 에어로졸이나 구름에 대한 연구가 충분치 않은 탓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었던건 사실이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이 상당한 수준의 온난화를 초래한다는 그 핵심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위협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는 대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칼세이건은 이런 상황을 냉전에 비유한바 있다14.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한 소련 공산주의 세력에 큰 위협을 느꼈고, 그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국방에 쏟아 부었다15. 하지만 적국의 군사적 행보가 어떻게 될지는 다분히 확률적이다. 핵전쟁 같은 파멸적 사건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떠한 종류의 유혈사태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16.

어쩌면 냉전 시기의 열렬한 반공 주의자들은 ‘그런 파멸적 가능성이 발현되지 않은것은 천문학적인 군사 비용을 썼기 때문’이라 주장 할지도 모르겠다. 필자 또한 그런 군비지출의 필요성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거대한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복잡한 계산과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필수란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야 말로 전쟁의 위협을 넘어서는 인류전체에 대한 위협이었다. 헌데 냉전용사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기후변화에 대해선 왜 그리도 무심했던걸까?

사람들이 이산화탄소로 인한 기후변화에 이토록 무관심했던데에는 두가지의 큰 힘이 작용 했던것 같다. 첫번째는 이산화탄소의 영향을 눈으로 보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화석연료를 태워 발생한 이산화황은 대기 중에서 황산 에어로졸을 만들었고, 그것은 곧 건물을 부식시킬 정도로 독한 산성비를 뿌렸다. ‘안전하고 효과좋은 냉매’로 주목받던 프레온 가스는 남극 상공 오존층에 큰 구멍을 냈다. 사람들은 이렇게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위협에 대해선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이산화황 배출은 강력한 규제 속에서 1980년 부터 지금까지 하향일로下向一路를 걷고있고17, 1987년 채결된 몬트리올 협약은 ‘오존층 파괴’라는 표현을 고어古語 비슷하게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태워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당장 사람들 눈앞에 명징하게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까지는 오랜세월이 걸렸다.

그런데 얼음이 녹아 북극항로가 뚫리는 등 온난화의 위험이 가시권에 들어온 오늘날까지도 많은이들은 지구온난화를 국제적 사기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냉전용사’들과 그 후예들은 이 씁쓸한 현실을 만든 일등공신들이다. 20세기 후반에 지구온난화를 극렬하게 공격했던 프레드 싱어Fred Singer, 프레드릭 사이츠Frederick Seitz, 빌 니런버그William Nierenberg, 로버트 재스트로Robert Jastow등은 열렬한 반공주의자 였다. 그리고 그들은 환경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수박’라 표현하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환경을 말하는 사람들은 겉은 초록색이지만 속은 벌겋다는 것이다.

그들의 공격이 사실에 기반한 정당한 공격이 아니었음에도, 그것은 대중들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냉전용사들은 기본적으로 자유시장을 강력하게 옹호했고,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의 개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규제를 통한 그런 개입이야 말로 시장주의자들이 가장 혐오하던 것이었다. 그들은 정부의 규제를 공산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산성비, 오존 홀, DDT, 지구온난화 등 규제를 통해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모든 주장에 반대했다.

아마 그 누구도 ‘자유는 신성하므로 고속도로엔 속도제한이 있어선 안된다!’고 주장하지 못할것이다. 고속도로에 속도제한이 없다면 그들 스스로의 목숨 또한 위태로워질테니 말이다. 운전자와 승객의 안전을 위해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규제해야 하듯, 인류 문명의 안전을 위해선 반드시 지켜져야 할 몇가지 기준선이 있다. 2009년엔 일군의 과학자들이 9개의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Planetary Boundaries’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2025년을 기준으로, 그 중 7개의 기준치가 초과된 상태이다.

  1. Arrhenius, Svante. “XXXI. On the influence of carbonic acid in the air upon the temperature of the ground.” The London, Edinburgh, and Dublin Philosophical Magazine and Journal of Science 41.251 (1896): 237-276. (노벨상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다음 게시물을 보는것도 재미있을것 같다 : Who was the first person to calculate global warming?) [^]
  2. 그리고 아레니우스는 화석연료 연소가 대기 중 CO2 농도를 두배 증가시키려면 천년은 걸릴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비교적 추운 스웨덴 지역에 살았던 그는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로 인한 어느정도의 온난화는 인간에게 득이 될거라 생각했다.[^]
  3. 같은 위도라도 시베리아 내륙은 대륙빙하로 덮이지 않는다. 북유럽과 북미는 빙하기에도 비교적 따뜻한 대서양 해류가 막대한 수증기를 공급해 폭설을 퍼붓는다. 하지만 시베리아는, 기본적으로 북극해는 얼어있는데 중위도의 다른 바다는 너무 멀어서 수증기 공급이 상당히 제한된다. 따라서 시베리아 대륙은 빙하기에 연평균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 이지만 건조한 대기로 인해 두꺼운 대륙빙하가 형성되지 않는다. 관련하여 과학자들이 추정하는 최종빙기 최성기the Last Glacial Maximum 당시의 지구지도를 첨부한다 : CLIMAP: The Last Glacial Maximum[^]
  4. Variations in the Earth’s Orbit: Pacemaker of the Ice Ages (1976, science)[^]
  5. 필자는 몇년전에 인간의 지하수 사용으로 지구 자전축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는 뉴스를 보았다. 하지만 이 또한 밀란코비치 주기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정도의 변화는 아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정도 변화는 돌고 있는 팽이위에 먼지 하나가 붙은 정도의 변화이다.[^]
  6. 지난 50여년간의 위성측정 결과, 태양에너지 입사량은 대략 11년의 주기속에서 0.1$\mathrm{W}/\mathrm{m}^2$ 가량의 진폭을 가지고 아래위로 미세하게 요동친다. 반면 산업화 이후 배출된 이산화탄소로 인한 온실효과는 3$\mathrm{W}/\mathrm{m}^2$ 에 육박한다. 즉, 이심률 변화로 인한 입사량 변화는 11년의 태양주기가 만들어내는 입사량 변화와 크게 다르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는 빙하기와 같은 극적인 온도변화를 만들어지 못한다. 밀란코비치 사이클은 북반구 고위도의 태양입사량을 미세하게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복잡한 피드백 속에서 증폭되어 지구 전체에 큰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즉, 밀란코비치 사이클은 자연적 기후변화에 대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것이다. 개인적으로 볼때, ‘페이스메이커’ 보다는 ‘트리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
  7. 참조 : Ice Age Temperature Changes[^]
  8. Atmospheric CO2 : Principal Control Knob Governing Earth’s Temperature (2010, science)[^]
  9. 그렇게 마나베는 산업화로인한 지구온난화를 예견함으로써 인류 전체에 큰 도움을 주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21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Nobel Prize in Physics 2021 최근 들어, 기후학이나 AI과학 등 정통적인 물리학 범위를 벗어난 영역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오는 경우가 잦다. 개인적으론 ‘인류에 대한 가장 큰 공헌’이라는 기준 하에서 ‘물리’라는 영역을 최대한 넓게 잡으려는 스웨덴 한림원의 사정과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 모두에 대해 상당한 공감을 느낀다. [^]
  10. 나사에서 만든 이산화탄소 배출 지도를 보면 이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Watch Carbon Dioxide Move Through Earth’s Atmosphere | NASA[^]
  11. 사실 ‘화산 꼭대기’라는 조건도 문제였다. 화산 분화구에서는 여러가지 화학물질이 섞인 기체가 상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킬링은 꼼꼼한 성격으로 그런 문제들을 모두 해결했다. 킬링은 남극 측정에선 근처 기계장비에서 나오는 $\mathrm{CO}_{2}$의 영향까지 잡아내기도 했다.[^]
  12. The Concentration and Isotopic Abundances of Carbon Dioxide in the Atmosphere (1960, Tellus)[^]
  13. 출처 : ⟪The Warming Papers (2011)[^]
  14. Carl Sagan Speech at Emerging Issues Forum[^]
  15. 오늘날에도 전지구적으로 전쟁에 소모되는 비용은 에너지 전환에 투자되는 비용보다 많다 :When will clean energy spending exceed military spending? | 2026, The Climate Brink[^]
  16.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있었던 소련 잠수함 B-59의 일화는 인류문명이 얼마나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걸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17. Global sulphur dioxide emissions by world region | Our World in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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