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에 <파인만의 가정교육>이라는 쇼츠영상을 올린적이 있다. 헌데 영상에 담진 않았지만 관련해서 내심 하고싶었던 말이 있었다 : 대한민국에는 한글로 읽을 수 있는 양자장론 교과서가 단 한권도 없다!
먼저 아버지 파인만Melville Arthur Feynman의 일화를 이해해보자 : 수소기체 방전관에 일정 전압을 가하면 빛이 나온다. 그런데 그 빛 – 즉, 그 ‘광자’는 어디서 오는것인가? ‘수소원자 속에 원래부터 광자가 있었던건 아니다.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낮아지면서, 그 낮아진 만큼의 에너지가 광자의 형태로 방출되는 것이다‘는 설명은 가장 흔한 답이고, 또 옳은 답이다.
하지만 그런 답을 말 할 수 있다는것이 광자방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것과 동치인것은 전혀 아니다. 조금만 더 깐깐하게 따져보면 이건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다 : 전자는 왜 하나의 에너지 준위에서 영원히 머무르지 못하나? 그냥 높은 에너지 준위에 영원히 있을 순 없나? 그리고 에너지준위가 변하는 그 과정은 어떤 물리적 원리와 방정식으로 기술되나? — 아버지 파인만은 ‘수소원자에서 광자가 나온다면, 그것이 애초에 원자 속에 있어야 했던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아들 파인만Richard Feynman에게 바로 그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 파인만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 일화를 다룬 영상의 댓글엔 많은 분들이 본인이 알고있는 나름의 답을 내놨지만, 그들은 모두 고등학교 물리1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위에 제시한 ‘모범답안’을 벗어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연하다. 프린스턴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파인만 조차 답하지 못했던 그 질문에 정확히 답하려면, 기본적으로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을 알아야 한다.
하버드 대학의 입자물리학자 Schwartz가 쓴 양자장론 교과서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이 책은 제가 하버드에서 수년간 가르쳐 온 강의를 바탕으로 합니다. 저는 첫 수업을 시작할 때 전등 스위치를 켜면서, 학생들에게 고전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곤 합니다. 빛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광자의 방출과 흡수는 입자 수가 보존되지 않는 양자 과정이며, 일상적 현상이지만 이는 양자장 이론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런 다음 (좀 더 차분하게) 이 책의 1장에 해당하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저는 양자장 이론을 역사적으로 발전시켜 온 방식대로, 즉 광자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양자 이론을 모든 입자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양자 이론으로 논리적으로 일반화한 것으로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이 책은 그 수업의 강의 노트와 추가 자료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양자장론을 모르고선 손전등에서 어떻게 빛이 나오는지 조차 설명 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파인만 아버지 일화에 대해 ‘양자장론을 말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뭔갈 모른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건 나 또한 여전히 모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대한민국엔 한글로 읽을 수 있는 양자장론 교과서가 단 한권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초과학 수준을 논할때면 항상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 비교하게 된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중에선 평생 일본에서만 교육받고 연구한 사람들이 있다. 입자물리의 자발적 대칭성 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에 대한 연구로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3명의 일본인은, 놀랍게도 전원이 일본에서 교육받아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들이다. 심지어 코바야시와 마스카야의 지도교수인 쇼이치 사카타 역시 평생 일본에서 교육받고 연구한 사람이다.
특히 마스카야가 얼마나 자신의 모국어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2008년 12월 8일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그의 노벨상 강연에서 였다. 그 강연은 일본어로 진행되었는데, 마스카야는 자신이 써온 일본어 대본을 읽었고 사람들은 프롬프터에 띄워진 영어 번역을 보고 읽어야 했다. 헌데 마스카야가 강연에서 했던 딱 한마디의 영어가 있었다 :
I am sorry, I cannot to speak English1.
무려 노벨상 강연에서 ‘I can’t speak English’ 정도의 영어를 문법까지 틀려가며 말하는 장면에 대해, 누군가는 왠지모를 부끄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반대다.
아직 내 능력으론 일본대학엔 자국어로 된 전공서적이 얼마나 많은지, 또 어느정도 수준까지의 전공서적들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노력 없이도, 마스카야의 경우를 보고있으면 전반적인 상황이 어떨지 명확하게 보이는듯 하다2. 일본은 오직 자신들 땅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교육받고 연구하여 노벨상 수상자를 낸다. 노벨상 강연에서 나왔던 마스카야의 발음을 직접 들어보면 알 수 있듯, 아마도 그는 그 흔한 영어발표 조차 거의 해본적이 없는듯 하다. 심지어 학사 졸업후 자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직장인도 노벨상을 받는게 일본이다3. 그들은 오로지 자국의 언어로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 어떤 분야의 최전선까지 나아갈 수 있는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대한민국엔 한글로 읽을 수 있는 양자장론 교과서가 한권도 없다. 한국인 저자가 쓴 교과서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4, 고전중 고전이라 할만한 Peskin의 양자장론 교재 같은 책에 대한 번역서 조차 없다. 양자장론 교과서 중 비교적 최근에 널리 쓰이게 된 Anthony Zee 교재에 대한 번역 또한 당연히 없다.
나는 이런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게 느껴진다. 양자장론은 초전도체나 초유체 같은 응집물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이론이다. 이 중요한 이론을 한글로 공부 할 수 없단 사실은 대한민국 기초과학의 pool이 얼마나 좁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이런 문제의 원인이 대한민국 공교육을 책임지는 소수 관료들이나 특정한 학술집단 따위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각한것 같다.
2025년 봄, 나는 유튜브에 고등학교 물리1 교과서에 대한 비판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 이 영상을 만들면서 느꼈던 충격은 꽤나 다중적이었다. 물리1 교과서에 그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에도 교과서 저자와 감수자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교육부의 검정까지 걸러내지 못했다는 점, 그 문제가 EBS가 집필하고 평가원이 감수하는 수능특강에는 더욱 노골적인 형태로 실려있다는 점,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문제가 10년이 훌쩍 넘는 동안 그 많은 교사들에 의해서 지적받고 수정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영상을 수십만명이 봤는데도 그 어느 하나도 책임이나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등의 그 모든 사실은 ・・・ 그야말로 ‘눈을 씻고 봐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노벨과학상을 간절히 염원한다5. 아마 어쩌면 가까운 미래엔, 수학자 허준이의 필즈상 수상 같은 ‘반짝 수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허준이 교수는 일본인 지도교수에게서 배우고 박사학위도 미국에서 받은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기초과학이 일본처럼 자력으로 설 수 있으려면, 적어도 공교육 교과서 정도는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한국어로 어디까지 배울 수 있는지’는, 우리의 기초과학 체력을 가늠 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아닐까? 예를들어 한 20년 후에 – 평생을 한국에서 살며 영어로 한마디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I can not speaking English’ 따위의 엉터리 영어를 한마디 한 후 스톡홀름 노벨 물리학상 해설 강연을 한글로 한다고 생각해보라.
하지만 아직은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한국의 고등 물리교과서는 일본의 과학 잡지만도 못하다. 학부생들은 대학에서 늘 엉터리 번역서를 들고 암호해독 하듯 낑낑대야 하고, 한 3학년 정도만 가도 그런 번역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중 과학서적 역시 엉터리 번역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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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일본어 억양 때문에 ‘cannot’이 ‘캔나-뚜’라고 들리는건지, 아니면 내가 들었던 데로 ‘cannot to’ 라고 하는건지 명확히 분간되지 않아서 몇번을 돌려들어봤다. 그럼에도 실제로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 100%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나에겐 후자인것으로 들렸다.[^]
- 마스카와의 1967년 박사학위 논문 또한 일본어 인데, 당시엔 학위논문을 손으로 썻다는게 참 인상적이다[^]
- 생체분자에 대한 질량분석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2002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가 회사 작업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한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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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양대 신상진 교수님이 양자역학 교과서를 썻다해서 상당한 기대를 안고 바로 사서 봤다. 혹시나 거기서 양자장론에 대한 간략한 정리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도 되었다. 하지만 교과서의 서술은 상당히 실망이었다. 나의 물리수준은 신상진 교수님의 수준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수준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학생입장에서의 판단은 말 할 수 있다. 특히나 안읽히는 문장들이 많았다. 신상진 교수님은 분명 양자역학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분이지만, 그가 쓴 문장이 제3자가 볼때 부드럽게 읽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신상진 교수님의 강의영상은 추천하지만 교과서는 비추천한다. 이미 양자역학을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지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서울대 송희성 교수님의 <상대론적 양자역학>은 아마도 한글로 쓰여진 전공서적 중 가장 양자장론에 가까이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기본적으로 상대론적 ‘양자역학’에 대한 책이지, ‘양자장론’에 대한 완결성있는 교과서가 아니다.[^]
- 언젠가 나는 ‘우리가 노벨상을 못탄건 과학을 못해서가 아니라 과학정치를 못해서’라는 주장을 들은적이 있는데, 나는 동의 할 수 없었다. 노벨상을 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for the greatest benefit to humankind ’라는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연구업적을 가장 선구적으로 낸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나는 더이상 우리나라에 노벨과학상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 하지 않을것 같다. 노벨상이 어떤 업적에 대한 순수한 가치평가의 결과가 아니라 커튼뒤에서 이뤄지는 로비의 결과라면, 왜 우리가 그토록 그 상에 목메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