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먼저 오르고 CO2는 나중?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이들이 흔히하는 주장 한가지는, ‘기온이 먼저 올랐고 이산화탄소는 나중에 올랐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 기후변화 부정론자 박석순이 쓴 『기후 종말론』에선,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 

사실 음모론자들의 주 관심사는 ‘진실’이 아니다. 음모론자들의 주 관심사는 ‘진실처럼 보이기’다 : 2000년대 초, 남극에서 연구하는 일군의 과학자들은 빙핵ice core 속에 갇힌 공기방울을 분석함으로써 지난 빙하기 때 지구기온이 먼저 오르고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나중에 올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는 2003년 3월, 과학저널 ⟪Science⟫에 발표되었다1.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온도상승이 먼저, 이산화탄소가 나중’이라는 뒤집힌것 같은 인과관계와 ⟪Science⟫지라는 이름값을 내세워 많은 대중들 머릿속에 사기당한것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 주장은 거짓이다.

‘빙하기는 밀란코비치 사이클Milankovitch cycles 때문’ 이라는 설명은 지금은 거의 공식마냥 외우는 사실이다. 하지만 밀란코비치의 가설이 합당한 이론으로서 과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것은 20세기 중후반의 일이다. 그 이전 과학자들이 지구 공전궤도나 자전축의 변화가 빙하기의 원인일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고 자명하다 : 공전궤도나 자전축의 변화는 지구에 입사되는 태양에너지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22.1도에서 24.5도 사이를 왔다갔다한다고 해서 지구 전체에 입사되는 평균에너지가 변하진 않는다 — 다만 위도에 따른 태양에너지 분포에 약간의 변화를 줄 뿐이다. 참고로 서울은 북위 37.5도, 부산은 35.2도 정도에 있는데, 한반도를 기준으로 보자면 지구 자전축 기울기의 변화가 주는 효과는 대략 서울-부산의 태양입사량 차이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 이심률 변화도 마찬가지다. 지구공전궤도의 이심률 \(e\)는 0.005에서 0.058 사이를 오가는데, 이로인한 연평균 입사량의 편차는 최대 \(0.6{\small \textrm{W/m}^2}\) 정도이다. 이 또한 전체 입사량 \(340{\small \textrm{W/m}^2}\)의 0.1% 수준이다. 참고로 복잡한 피드백 등을 다 무시하고 지구를 완전한 흑체로 가정했을때, 영상 15도인 지구온도를 1도 더 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입사량 증가분은 대략 \(3.8{\small \textrm{W/m}^2}\) 정도다. 그러니까, 지구 공전궤도나 자전축의 변화로는 지구온도를 1도 올릴만큼의 입사량 변화도 줄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빙하기때 지구 평균온도는 지금에 비해 5도 이상 낮았다2.

밀란코비치 사이클이 주는 미세한 입사량 변화, 그리고 입사량 분포의 변화를 증폭시키는 핵심 요인이 바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였다3. 따라서 2003년 ⟪Science⟫ 논문은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로 인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것이 아니라 더욱 강고히 하는 연구결과였다. 지구온도와 이산화탄소는 서로 아주 강하게 얽혀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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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순은 『기후 종말론』에서 ‘대재앙을 선동했다’며 엘 고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Science⟫ 논문을 제 입맛대로 해석하며 기후변화 부정론의 무기로 쓰고 있다. 많은 기후과학자들은 바로 이런 행태에 분노했고, 2010년엔 그들이 보낸 공개서한이 ⟪Science⟫에 실린적이 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도 박석순이 들이민 ⟪Science⟫ 논문은 틀림없이 인간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생각한다면, 정확히 같은 ⟪Science⟫에 실린 다음의 문장들 또한 새겨듣길 바란다 :

최근 기후과학에 대해, 그리고 더 우려스럽게는 기후과학자들에 대해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가하는 많은 공격은 대체로 특수 이해관계나 독단에서 비롯된 것이지, 우리가 보고 있는 증거를 신뢰성 있게 설명할 대안 이론을 제시하려는 정직한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수천 명의 과학자가 참여하여 방대하고 포괄적인 보고서를 만드는 IPCC와 그 밖의 과학적 기후변화 평가에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정상적인 일이지만, 몇 가지 실수가 있었다. 오류가 지적되면 그것은 수정된다. 그러나 최근의 사건들 가운데 기후변화에 대한 다음의 근본적인 결론들을 바꾸는 것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1. 대기 중에 열을 가두는 기체의 농도가 증가하여 지구가 온난해지고 있다. 워싱턴에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왔다고 해서 이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2.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러한 기체의 농도가 증가한 원인은 대부분 인간 활동이며, 특히 화석연료 연소와 삼림 벌채 때문이다.
  3. 자연적 원인은 언제나 지구의 기후변화에 일정한 역할을 하지만, 이제는 인간이 유발한 변화가 그 영향을 압도하고 있다.
  4. 지구 온난화는 해수면 상승 속도의 증가와 물순환의 변화를 포함한 많은 다른 기후 양상을 현대에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시킬 것이다.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는 바다를 더욱 산성화 하고 있다.
  5. 이러한 복합적인 기후변화는 해안 지역사회와 도시, 식량과 물의 공급, 해양과 담수 생태계, 산림, 고산 환경을 비롯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위협한다.

기후변화와 과학의 진실성Climate Change and the Integrity of Science (2010, Science)

■ 

  1. Timing of Atmospheric CO2 and Antarctic Temperature Changes Across Termination III (2003, Science) [^]
  2. Globally resolved surface temperatures since the Last Glacial Maximum (2021, Nature[^]
  3. Atmospheric CO2: Principal Control Knob Governing Earth’s Temperature (2010, Science) [^]
  4. Correspondence between temperature and atmospheric CO2 during the last 800,00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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